의원발언대

[장묘문화의 개선]

[장묘문화의 개선]

지난 춘천시의회 (산업위) 공무국외여행 시 중국 서안의 진시황릉과 병마용을 도라 본
소감은 릉의 위용보다는 한 인간의 죽음에 허무함이다.
죽음 후 영생불멸을 기대한 시황제로 인하여 수많은 백성과 노예들이 수 십년을 혹사당
하여 만들어 놓은 조형물 앞 현장에 서서 우린 그저 감탄만 하여야 할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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⊙ [자료] 굿데이 기사 [사회, 기획/연재] 2002년 10월 23일 (수) 10:03

[장묘문화바로잡기] 죽은뒤 화려함 무슨 소용

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. 죽음을 배운자는 굴종을 잊고, 죽음의
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킨다. 몽테뉴 <수상록>의 한 귀절이
다.
진정하고 영원한 자유는 아름다운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메시지다. 그러나 우리 민
간신앙은 죽음을 공포와 재앙으로 인식한다. 세상에서 누리는 행복 가운데 오래 사는
것(壽)과 사람 역할 다하고 편안하게 죽는 것(孝終命)을 오복(五福)의 첫째와 마지막으
로 친다.
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떻든 목숨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선(至善)의 가치라면 그
마침은 아름다운 삶의 징표로 남아야 할 것이다.

인류 문명의 불가사의라는 피라미드와 미라, 인도의 타지마할, 중국 진시황의 병마용(兵
馬俑), 산둥성(山東省)의 공림(孔林·공자가의 무덤군), 고구려 즙안현의 장군총(將軍塚)
등은 권력과 영화·명예를 영원히 누리고자 한 화려한 무덤들이다. 그들의 시신인 미라
가 박물관에 박재돼 있다. 그 영혼은 편안할까. 과연 아름다운 죽음일까.

필자가 지난 92년 중국 신장성 타크라마칸사막을 탐험할 때 모래언덕 지하에서 소름끼
치는 무덤을 본 적이 있다. 약 15m 깊이의 토굴 속에는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형태
의 미라가 놓여 있었다. 그리고 바로 뒷벽에는 화려한 의관을 갖춘 왕과 왕비가 나란히
서 있는 그림이 있었다. 살아서는 왕과 왕비였던 미라. 관광객의 시선은 미라와 그림을
번갈아 바라보게 된다. 필자는 허무한 인생의 잔영을 확연히 보았다.

또 60년대 도시계획문제로 조선조 태종의 왕자인 온녕군의 묘를 파묘했었다. 500년이
넘은 왕자무덤의 파묘는 학계와 언론 등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. 과연 무엇이 나올까. 긴
장감마저 흘렀다. 하지만 먼지만 뽀얗게 쌓여 있을 뿐 기대감은 허무함으로 끝났다. 죽
어 500년.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. 허무다. 인간들이여! 무덤에 꽃피기를 기대하지
말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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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제우린 우리의 장묘 문화를 우리와 문화권이 유사한 중국과 일본을 비교하여 다시 한
번 곱씹어 보아야 하겠다.

■[중국]
풍수지리사상의 원조인 중국대륙은 모택동이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이전까지만 하
더라도 거대한 묘지라고 불릴 정도로 어디를 가나 묘지가 빽